언론에 비친 KUBS

[매일일보] "고대 AMP 참 좋은데…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대 AMP 참 좋은데…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매일일보] 4500여 교우가 활동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최고경영자 교우회(이하 고대 AMP 교우회). 지난 2월 28일 임기 2년의 제 19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영식 천호식품 대표를 매일일보가 만났다.<편집자註> Q. 먼저 19대 회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회장을 맡게 되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하던데. A. 전임 한원덕 회장님은 17대와 18대 회장을 연임하며 고대 AMP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노력 덕분에 오늘의 고대 AMP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 회장님이 재작년 송년회에 몸이 편찮아 못 나오셨는데, 그때 몇 분이 "김영식 회장이 하면 행사 하나는 끝내주는데"라고 말씀하시고 회장으로 추대하셔서 19대 회장으로 일찌감치 낙점돼 있었습니다(웃음).  Q. 이번 고대 AMP 회장을 맡으시면서 3개 대학의 회장을 맡으시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AMP회장 '3관왕'이신 셈인데요. A. 저는 동아대를 시작으로 부산대 AMP총동창회장을 맡았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는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모임들과는 달리 CEO들만의 모임이라 사업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AMP를 다녀보라고 권하는 '전도사'가 되었고 저 역시 여기저기 AMP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26개 대학의 AMP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참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Q. 회장으로서 고대 AMP 교우회를 이끌어나갈 방향이나 역점 사업, 운영 목표 등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A. 대한민국은 소통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취임과 함께 화합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청계산에서 열린 등산모임 시산제에 갔다가 너무 많은 사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150명이 참석한 행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똘똘 뭉치고 화합하는 것이 고대 AMP 최고의 자랑거리며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좀 더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설명해 주세요. A. 연말이면 각 대학에서 경영대상을 줍니다. 대부분 자수성가한 사람이 선정되는데 꼭 매출이 많은 사람이 경영을 잘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정말 타인에게 본보기가 된 경영인이 경영대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상자에게 학교나 동문회에 찬조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제가 개인 돈 1000만원씩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국에 이런 곳이 없습니다. 고대 AMP만 있는 상이라 더욱 빛날 것입니다. 또 고대 AMP 총교우회에는 비즈니스, 여성, 문화예술 등 여러 분과가 있습니다. 각 분과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생각입니다. 비즈니스 위원회를 전임 한원덕 회장님이 만드시고 활성화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식 고대 AMP 신임회장이 자신의 인생과 경영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Q. 19대 회장으로서 특별히 바꾸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A. 4월5일 원장, 주임교수 등과 함께 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26개 대학을 다니며 느낀 장·단점을 설명하고 보다 발전적인 방안을 건의할 생각입니다. 총장님들이 통상 AMP에 관심이 높은데 고대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신 것 같습니다. 총장님의 관심과 지원도 적극 요청할 생각입니다. 다른 학교들과 굳이 비교해 보자면 서울대 AMP는 공부는 빡세게 잘 시킵니다. 하지만 끝나면 모임이 잘 안 됩니다. 대기업 임원이 80%인데 몇 년 후면 대부분 퇴직해 모임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군인도 4성 장군을 주로 뽑았는데 몇년 후 퇴임하는 경우가 많아 2성 장군을 뽑습니다. 제가 부산대 회장일 때 모임이 하도 잘 돼서 서울대가 벤치마킹을 해갈 정도였습니다. Q. 그렇다면 회장님의 총교우회 활성화 전략은 무엇입니까? A. 눈에서 멀어지면 맘도 몸도 다 멀어지는 법입니다. 저는 스킨십을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아무리 SNS가 활성화돼도 땡볕에서 향기를 맡고 눈을 마주쳐야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3월에 여러 모임에서 선물도 주고 만남도 가지니 김영식 만세 합디다. 제가 열정이 많습니다. 비구름이 모이면 비가 오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면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더 많은 사람이 더 몰리는 법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대 AMP 잘 되겠네 합니다. Q. 그런 정열은 어디서 나옵니까? A. 열정은 매일매일 매일일보 보니까 나오던데요(웃음). Q. 4월에도 골프 등 많은 행사가 있는데,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꾸준함이 중요할텐데요. A. 교우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회장단 골프 행사 10팀을 모집하는데 금방 자리가 찼습니다. 벌써 "회장님 자주 봅시다"하는 소리도 나옵니다.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모이고 자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껏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일터를 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쫓아가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AMP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김영식 고대 AMP 회장(왼쪽)과 나정영 매일일보 회장이 대담하고 있다. Q. 차기 회장은 회장단에서 나와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아는데, 취임하자마자 20대 회장 얘기는 좀 이른 것 아닙니까? A. 20대 회장 얘기를 한 이유는 부산대의 경우 회장과 상임 부회장, 그리고 수석·일반 부회장 등이 있습니다. 선임 회장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잘된 사업과 부진한 사업을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계승할 사업과 중단할 사업이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회장단에서 차기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저를 벤치마킹할 것입니다. 2년간 잘 배우고 나면 신임 회장은 잘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Q.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외람되지만 참 특이하신 분 같습니다. A. 한 교수는 나더러 연구대상이라고 합디다.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절대로 따라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달 300만원 상당의 로또를 삽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로또를 나눠줍니다. 한번은 산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로또를 줬더니 산신령 만난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작년 10월 29일 나눠주고 남은 로또 10여장 중 1장이 2등에 당첨됐어요. 당첨금이 4860만원이었는데 세금 제하고 받은 돈이 3800만원이었습니다. 거기다 1200만원을 더해 5000만원을 만들어 29일 아기를 낳은 엄마 50명에게 100만원씩 나눠줬습니다. 어느 엄마는 아기 이름을 백만이로 지어야 겠다고 하더라구요.  Q. 닉네임을 로또맨이라고 해야 되겠는데요. A. 산수유 아저씨, 오뚜기 등 별명이 참 많습니다. 로또는 상상을 즐기라고 나눠주는 것입니다. 일종의 상상경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은 상상한대로 삽니다. 2000년도 부시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산수유를 보냈습니다. 세계 대통령이 되려면 힘이 좋아야합니다. 3개월 후 부시 대통령이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로사 부시 사인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산수유 효과를 부인이 더 본 것이지요. 편지를 받은 기념으로 ‘2통 사면 1통 더’ 이벤트를 펼쳤고 대박이 나서 도곡동 천호식품 건물을 지었습니다. 저는 세계 각국의 정상이 취임하면 선물을 보냅니다.  이렇게 해서 23명의 정상으로부터 답장을 받았습니다. Q. 현재의 근황은 어떠신지요? A. 천호식품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쇼핑몰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우수하지만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상품을 전문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참새몰이 그것입니다. 4월 정식 오픈 예정입니다. 참새몰은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의 멘토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면담 후 사업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22~35세 청년에게 1인당 자금 2000~5000만원까지 투자해줄 생각입니다.  Q.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철학이 있다면? A. 나이 40까지는 열정을 갖고, 50부터는 얼굴의 명예를 지키고, 60에는 베풀고, 70에는 욕심을 버리고, 80에는 지나온 삶을 추억하고, 90에는 다가올 100세를 대비하고, 100세 때는 머나먼 여행을 준비하고 살라고 합니다. 올해 내 나이 67세니 베풀면서 살려고 합니다. 푼돈을 잘 써야 폼도 나는 법입니다. 그래서 선물도 주고, 로또도 주고, 용돈도 줍니다. 목욕탕을 가든 등산을 가든 5만원 2장, 1만원 3장을 가지고 나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용돈을 줍니다. 고등학생 이상이면 5만원을 주지요.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합니다. 특유의 달변으로 인터뷰를 즐겁게 이끌어준 김영식 회장은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난하고 병들어 누운 주위의 이웃이 부처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으로 얘기를 끝맺었다. 특유의 긍정적인 생각과 실천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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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시사저널e] 금융권, 서금회 지고 고대·성대출신 득세
금융권, 서금회 지고 고대·성대출신 득세 신한금융지주 서열 1~3위 모두 고대…KB금융 등 주요 지주 회장은 성대가 싹쓸이   승승장구하던 서강대 출신 금융인이 지고 고려대와 성균관대 출신들이 금융권을 주름잡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박근혜 정권 아래서 금융권을 주름잡던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가 지고 고려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고금회와 성균관대 출신 모임인 성금회가 금융권에서 부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이명박 정부 때 고려대 출신 금융인들이 전성기를 맞이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서금회로 그 위상이 넘어간 바 있다. 최근엔 다시 신한금융그룹에서 고려대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고려대 인맥이 금융권서 재부상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려대 출신 인사들이 속속 은행 주요 요직을 꿰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위 금융그룹인 신한금융그룹 서열 1~3위도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 위세를 떨쳤던 고려대 출신 금융인 라인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일 신한은행에 위성호 은행장이 신규 취임했다. 신한카드 사장도 교체됐다. 조용병 신한지주 회장과 위 은행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은 등 신한지주 내 서열 1~3위 모두 고려대 출신이다.  조 회장은 대전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에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위 행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임 사장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신한은행은 이 외에도 고려대 출신이 많다. 허영택 신한은행 글로벌 부문 부행장도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쳤다. 임 사장 직속 후배다. 주철수 부행장(영업추진본부)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김봉수 신한금융투자 부사장(경영학 전공), 임보혁 신한지주 부사장(경영학과)도 모두 고려대 출신이다. 그룹 회장부터 주요 계열사 핵심 인사가 모두 고려대 출신인 셈이다.  다만 신한은행은 고려대 출신 인사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학연을 따지지 않고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출신 이 몰려 있는 것에 대해 '우연의 일치'라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과거 서강대 출신들이 여러 금융기관 요직을 맡으면서 서금회 논란이 일어났던 것 만큼 금융권에선 고금회 출신이 요직에 앉으면서 서로 끼리 끼리 편의를 봐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선 금융권 내 고금회보다 서금회와 성금회가 약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국정논단 사태로 인해 권력을 상실하면서 금융가에서는 서강대 출신인 박근혜 전대통령 파면과 함께 서금회 시대가 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서금회의 대표적 인사로 금융권 수장이 됐던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과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모두 퇴임하고 금융권을 떠났다. 이 자리를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차지했다. 최 은행장도 고려대 출신이다.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서금회로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은행권 수장은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유일하다. 올해 초 이 행장은 우리은행장 연임에 성공했다. 더불어 서금회 논란 부담을 덜었다. 이 행장은 서금회에 대해선 2014년 취임식 서 "단순한 친목 모임에 불과하다"며 서금회 논란을 불식시키려 한 바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을 평가할 때 실적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며 "출신 학교로 평가하는 건 일부 이광구 행장에 대해 반대 생각을 가진 직원들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성균관대 출신도 금융권 요직을 맡고 있다. 정권 변화와 상관없이 최고 요직에 기용돼 금융권을 움직이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윤종규 KB금융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성균관대 출신이다.  윤 회장은 성균관대 경영학 학사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김정태 회장은 성균관대 행정학을 전공했다. 김용환 회장은 서울고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순우 전 우리금융 회장도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해 국내 4대 금융지주 회장에 성균관대 출신들로 한번씩 채워진 셈이다. 김용환 회장은 올해 4월 임기가 만료되지만 윤 회장(11월)과 김정태 회장(내년 3월)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았다. 연임 가능성도 높다. 또한 김용환 회장 연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금융권 내 고려대 출신 못지 않게 성균관대 출신들이 인사권을 쥐고 금융권을 움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나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행장이나 부행장이 어느 출신 대학이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청탁 전화가 온다"며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그런 걸 안 들어주면 뒤에서 좋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은행권 내부에 불합리한 의사결정과 불투명한 인사 문제가 항상 있었다. 과거 정부가 먼저 이런 분위기를 부추긴 면이 있다"며 "금융지주와 은행들이 비공식 라인을 통한 인사 개입에 시달리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 출신 학교, 출신 지역이 금융권 인사에서 무의미해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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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내일은 슈퍼리치(39) “누구나 다니고 싶은 여행회사 만들 것” 마이리얼트립 이동건(경영05) 대표
※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일은 슈퍼리치(39) “누구나 다니고 싶은 여행회사 만들 것”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     첫 번째 사업을 접는 날, 그는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장소는 서울 강남 파이낸스센터 지하의 한 도너츠 카페. 두 명의 동업자들과 함께다. 잠깐, 사업이 망한 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6년 전 이렇게 ‘헐렁했던’ 청년창업자는 이제 ‘5년차 스타트업’ 대표가 됐다. 이제는 진지하고 절박하다. 사업을 ‘경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길게 본다. 오래 즐겁게 일할 회사를 만들고 싶다. 마이리얼트립 이동건(31) 대표 이야기다.  2012년 봄 서비스를 시작한 마이리얼트립은 해외 여행을 가는 한국 여행자들과, 해외에 체류 중인 가이드를 연결해 주는 중개 플랫폼이다. 갈수록 ‘현지 경험’을 중요시하는 여행자들의 수요가 사업의 출발이었다.  플랫폼에 등록한 현지 가이드가 직접 짠 투어ㆍ액티비티 일정을 짜서 올리면, 개별 여행자가 일정을 선택하고 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건축가가 말해주는 런던 일일투어’, ‘미대생과 함께하는 스케치 투어’ 등 가이드의 배경도,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5년만에 회사는 누적 투자금액 53억원, 월 거래액 23억원, 일일 예약건수 평균 1000건을 달성했다.  STAGE 1. 창업은 절대 ‘경험’이 아니다  그에게도 ‘부끄러운’(?) 과거는 있다. 첫 사업에 가볍게 임했던 자기 자신이다. 기업가 정신을 탐구하던 동아리에서 막연히 느꼈던 ‘멋있는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1년, 그는 ‘콘크리트(CoNCreate)라는 크라우드펀딩 사업을 론칭했다. 국내에선 첫 번째 모델이었다. 그가 유치한 12개의 펀딩 중 6개가 성공했다. 나름 잘 되고 있었지만 1년만에 사업을 접기로 결심했다. 일이 자꾸 커지고 바빠지자 ‘잘못 하다간 휴학하는 거 아니야?’ 하는 철없는 생각도 들었다. “성공해도 좋은 경험이고, 실패한대도 좋은 경험이 될 거로 생각해서” 시작한 사업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아직도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 남아있는 그때 그 ‘기념사진’은 “안 진지했음을 대변하는” 증거물이다.  얻는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사업에 대한 물음표가 남은 상태에서 그는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대학교(NYU)와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청년창업자 몇 팀을 만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은 대화 몇 마디만 해봐도 ‘내가 인생을 걸고 이걸 하고 있어’라는 기운이 느껴졌어요. 원래는 사업 한번 해 봤으니 취직해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그들의 지지한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제대로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죠.” 돌아와서는 두 번째 도전에 매달렸다. 하루는 창업가를 희망하는 학생 대상의 강연회를 찾았다가, 끝난 후 강연자에게 달려가 대뜸 명함을 달라고 했다. “저 스스로 다짐했던 게, ‘되게 절박한 사람처럼 행동할 거다’라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를 만났다. 마이리얼트립의 최초 투자사 프라이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분께서 ‘이 애는 뭐지?’했을 것 같아요. 창업에 관해 듣고 싶다고 왔는데, 아이템은 없다고 하고.” 한 번 만남이 두 번 되고, 세 번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아이템 회의로 흘러들어 갔다. ‘여행’으로 방향이 굳어졌다. 분야는? 항공, 숙박도 아닌 ‘진짜 여행 플랫폼’으로 결정됐다.  아이템 없이 투자자를 먼저 만난 케이스가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은 창업자 분들이 수준도 높고 아이템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시제품까지 만들어서 투자를 찾아다니는데, 운이 좋았던 거죠.” STAGE 2. 더딘 출발에서 얻은 교훈  그렇게 초기 투자금과 부모님의 지원을 합해서 3000만원을 들고 2012년 2월 사업을 시작했다. 멤버는 이동건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백민서 부대표 둘 뿐이었다. 백 부대표는 현재 회사를 떠나 유학 중이다.  그런데 오픈 이후 두 달 내내 단 예약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인들을 통해 동원한(?) 예약건은 있었지만 진짜 손님은 여전히 ‘0명’이었다. “‘우리가 되게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이 아이템이 틀린 게 아닐까’ 계속해서 고민했죠.”  그러던 7월2일, 드디어 첫 예약이 이뤄졌다. 이 대표는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첫 손님들은 시청 환경과에 재직중인 공무원들이었다. 여행지는 친환경 도시로 유명한 독일 프라이부르크. “검색을 타고 타고 들어왔다고 하시더라.” 그다음도, 다음다음 예약도 천천히 이뤄졌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더딘 출발에는 타깃 설정 실패라는 이유가 있었다.  “제가 창업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홍보해야 할 대상도 대학생들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대학생은 예산에 민감한 여행자이고, 저희 상품 초기 컨셉은 오히려 30~40대 분들에게 좀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가격이 비싼) 프라이빗한 여행도, 참여인수를 늘리고 가격은 내린 투어 상품도 함께 준비해 놓았더니, 20대 고객 비율이 가장 높아졌어요.” 타깃 설정 말고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경영학을 전공한 문과생 창업자에게는 ‘개발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PC로 보는 홈페이지 하나를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1~3일차 자세한 일정에, 항공ㆍ숙박 가격정책 등까지, 여행 상품이라는 것이 굉장히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PC 앞에 앉아 신중하게 고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바일 환경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더라고요. 지난해 2~3명이던 개발인력을 10명까지 대폭 충원하고, 아이폰ㆍ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을 새롭게 오픈했어요. 그랬더니 현재는 모바일 앱과 웹페이지를 통해 구매하는 비율이 70%를 넘어섰습니다.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STAGE 3.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여행사를?”…“누구나 다니고 싶은 회사 만들 것”  흔히 ‘빅2’ 여행사(하나투어ㆍ모두투어)가 점유한 한국 여행업계에서, 틈새 성장 전략은 있을까. 이 대표는 “독점이 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작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 출국자 수가 20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들 회사의 매출이나 영업이익 성장세가 여행 수요 증가분만큼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오히려 수요는 에어비앤비ㆍ익스피디아 등 외국계 회사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 티켓몬스터 같은 소셜커머스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예전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한 편”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저희 같은 회사에도 기회가 온다는 것이죠. 현지 여행 가이드 플랫폼 시장에 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항공ㆍ숙박 시장에 비해 굉장히 작아 보이고,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은 분야니까. 우리의 경쟁자는 아니지만 에어비앤비도 최근 트립스라는 서비스를 출시했고요,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커졌거든요. 경쟁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건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마이리얼트립은 업계의 경쟁적인 상황을 헤쳐나갈 방향을 두 가지로 잡았다. 마이리얼트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점적인 상품을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같은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마이리얼트립만이 줄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배경이 다양한 가이드를 모집해 특별한 투어들을 늘리고, 결제의 편의성이나 모바일 앱의 완성도 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 이 대표의 목표는 ‘저 멋진 곳에 나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멋진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한때 가까운 친척 어른에게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여행사를 하냐”는 말을 듣고 ‘업은 정말 멋있는데, 이미지는 왜 이렇게 영세한가’ 고민한 결과다. 외국에서는 에어비앤비 등이 ‘여행업도 IT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선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행사’라고 하면 작은 사무실, 전화받는 직원들, 패키지여행 가이드 등의 이미지로 굳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는 “튼튼하고,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옛날에는 혼자만의 꿈에 젖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흔히 말하는 엑시트(Exitㆍ투자금 회수) 같은 거였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요즘은 튼튼하고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오래가는 회사가 되면 저도 마이리얼트립 안에서 ‘해피하게’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진지하게, 오래 하고 싶습니다.”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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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Who Is ?] 박정원(경영81)두산그룹 회장
※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Who Is ?]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 생애 박정원은 두산그룹 회장이다. 작은아버지인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으로부터 그룹 총수자리를 물려받은 뒤 4세경영시대를 열며 현재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1962년 3월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 뉴욕지사에 사원으로 입사해 도쿄지사를 거쳐 일본 기린맥주에 입사했다. OB맥주 이사대우로 두산에 재입사해 두산관리본부 총괄 전무, 두산상사BG 부사장, 두산상사BG 사장을 역임했다. 두산건설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지주회사 격인 두산의 부회장을 겸직했다. 두산건설 회장을 맡으면서 두산가의 4세 가운데 최초로 회장으로 승진했다. 또 지주회사 격인 두산의 회장도 계속 맡아왔다. 두산의 등기임원으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관리를 총괄하다 박용만 회장으로부터 그룹회장을 승계받아 오너4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두산그룹은 형제들이 번갈아가면서 그룹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을 이어오고 있는데 박정원의 승계도 이에 따른 것이다. ◆ 가족관계 조부인 박두병씨는 두산그룹의 초대 회장이자 두산 창업주 박승직씨의 아들이다. 아버지 박용곤씨는 박두병 초대 회장의 장남이자 두산 명예회장이다. 어머니는 이응숙씨이고 별세했다. 작은아버지들로는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 겸 예술의전당 이사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있다.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사장이 여동생이며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남동생이다. 사촌으로 박경원 전 성지건설 부회장,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전 두산 산업차량BG 사장과 차남 박석원 두산엔진 부사장, 박용현 회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과 차남 박형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박인원 두산중공업 전무,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장 등이 있다. 부인 김소영씨는 공군 참모총장과 제13대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씨의 딸이다. 박정원은 슬하에 딸 박상민씨와 아들 박상수씨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 학력 1981년 대일고등학교를, 1985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경력 1985년 두산산업에 입사했다. 1990년 1월 두산산업 뉴욕지사에 사원으로 입사했으며 6개월 뒤 도쿄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1992년 일본 기린맥주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1993년 오비맥주 부장으로 두산에 재입사한 뒤 이사까지 올랐다. 1998년 두산 관리본부 상무로 자리를 옮겨 1999년 두산관리본부 총괄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두산 상사BG 부사장을 거쳐 2001년 두산 상사BG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05년 7월부터 2007년 3월까지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을 역임했다. 두산산업개발은 2007년 3월 두산건설로 이름이 변경됐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두산건설 부회장을 맡았고 2007년 12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지주회사 격인 두산의 부회장을 겸직했다. 2009년 3월부터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때 두산베어스의 구단주도 맡았다. 2012년 5월부터 두산 지주부문 회장도 겸직했다. 두산가 4세 가운데 처음 회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3월 두산의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박정원은 두산의 면세점사업 출정식에 참여해 사업유치에 힘을 보탰다. 2016년 3월 두산그룹 회장을 물려받게 됐다. 그는 30여 년 동안 두산그룹의 사원으로 시작해 현장을 두루 거치며 두산그룹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다가 회장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박정원은 두산 오너가 가운데 두산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2016년 9월30일 기준으로 보통주 133만7013주(6.29%), 우선주 1만5881주(0.29%)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는 앞으로 두산그룹이 4세들 간의 ‘사촌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 사건/사고 1999년 7월 두산은 1억 달러 규모의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이 가운데 67.29%를 박용곤 회장 등 두산그룹 지배주주들이 인수해 두달 만에 박정원 등 일가 26명에게 증여했다. 발행 당시 행사가격이 주당 5만100원이었던 이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주가에 연동해 행사가격을 조정하는 '리픽싱 옵션'이 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두산 주가가 폭락하자 두산일가는 두산의 지분 34.5%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참여연대는 두산의 BW발행에서 행사가격 조정조항이 공시되지 않았고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대주주간 불공정거래를 통해 편법증여가 이뤄졌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금융감독원은 두산이 당초 해외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다고 했으나 국내기관투자가들이 전량 인수해 결과적으로 유가증권신고 의무를 위반했다며 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3년 2월 두산은 편법증여 논란을 빚어온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전량 무상소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4년 두산건설은 주식 1주를 현대그룹의 고려산업개발 주식 0.76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합병해 두산산업개발을 만들었다. 2005년 두산건설이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두산건설은 고려산업개발과 합병 당시 자본금 2400억 원보다도 많은 2797억 원의 분식회계를 안고 있어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였다. 반면 고려산업개발은 우량한 회사로 두산일가는 당시 합병으로 440억 규모의 두산산업개발 주식을 새로 받았다. 두산산업개발은 2007년 두산건설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2005년 11살이던 아들 박상수군을 ‘싱가포르 영주권자’ 자격으로 경기도 성남시 모 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켰던 사실이 2014년 밝혀졌다. 박정원은 2004년 두산상사 사장으로 재직할 때 현지법인 등기이사로 등록해 영주권을 받았다. 당시 싱가포르 법에 따라 현지법인의 등기이사 가족도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싱가포르에 거주한 적도 없던 박상수군이 영주권을 얻어 외국인학교에 입학했던 것이다. 두산그룹의 계열사가 최근 유동성 위기로 몸집을 줄이고 희망퇴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과 관계없이 박정원 등 오너 일가가 배당으로만 매년 수백억 원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박정원은 2014년 두산으로부터 배당금으로만 70억 원을 받았다. 두산은 2014년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현금 배당을 나눠줘 100%가 넘는 배당성향을 기록했다. 여기다가 두산은 2015년 8월 1주당 배당금을 2014년보다 500 원 늘어난 4500원으로 정했다. 두산은 2015년 1조 원 가량의 손실을 냈다. 매출과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각각 6.66%, 73.49% 줄었다. 그러나 2016년에는 913억 원의 현금배당을 했다. 전체 두산 주식의 44.05%가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어 박정원 등 오너 일가가 받아가는 배당금만 515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박정원이 41억 원으로 가장 많다. 박정원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두산 주식의 80% 가량이 주식담보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두산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이 2016년 2월 ‘A’에서 ‘A-’로 하향조정됐다. 한국기업평가는 “두산 주요 계열사의 2015년 잠정실적은 영업수익성 저하와 대규모 당기순손실로 요약된다”고 진단했다. 2016년 3월2일 두산건설은 액면가액을 5천 원에서 500억 원으로 감액해 자본금을 4206억 원에서 510억 원으로 줄였다. 또 3월26일 레미콘 제조사업에서 관악공장을 분리해 렉스콘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향후 렉스콘을 매각해 주력사업에 집중하려 한다. 두산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지만 영업환경도 우호적이지 못해 박정원은 앞으로 그룹의 총수로서 이런 상황에서 실적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재무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알짜로 꼽히는 공작기계 사업을 MBK파트너스에 넘기기로 했다. 매각가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에 난항을 겪었지만 박용만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진행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최종 합의에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매각가격은 두산이 당초 기대한 가격보다 7천억 원 가량 낮다. 2016년 하반기에 재무구조 개선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두산밥캣 기업공개가 한차례 난항을 겪었다. 두산밥캣은 애초에 공모희망가액 4만1천~5만 원에 4898만1125주를 공개해 최대 2조449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10월 초에 실시된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결과 공모희망가보다 낮은 3만 원대에 수요가 몰려 부득이하게 기업공개 일정을 한차례 연기했다. 투자은행 안팎에서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에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공모기대가를 지나치게 높이 잡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두산밥캣은 미국과 일본 해외경쟁사의 주가를 비교대상으로 삼아 주가수익비율(PER)을 최저 19배로 계산했는데 이는 국내 기계업종의 평균인 12~13배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두산밥캣의 상장일정이 연기되면서 두산그룹 계열사의 주가도 급락했다. 두산엔진과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의 주가는 두산밥캣 상장이 연기된 다음날 직전 거래일보다 각각 –10.59%, -7.22%, -2.67% 내렸다. 상장연기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잡음도 일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의 공매도 물량은 10월5일에 141만417주를 기록했다. 이는 두산인프라코어 상장 이후 최대치다. 이 때문에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이 두산밥캣의 상장 실패 분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공매도에 나선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매도란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판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되사서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기법을 말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10월5~13일 사이에 주가가 11.3% 하락했는데 공매도 세력은 당시 낙폭만큼의 차이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그룹은 11월 초에 두산밥캣의 공모조건을 확정했다. 공모가는 3만 원으로 확정됐으며 공모물량도 애초 계획보다 40% 이상 줄인 3002만8180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이 확보하는 금액은 9천억 규모로 대폭 줄었다. 공모물량과 공모가를 모두 줄였으나 두산밥캣은 일반청약에서 0.29:1의 저조한 흥행률을 기록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존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미국 인프라수요가 급증해 두산밥캣이 큰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이 미달물량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해 두산밥캣은 공모주를 모두 처분할 수 있었다. ◆ 상훈 ◆ 어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룹이 재무구조 강화에 성과를 거뒀다. 신규 사업들도 차질 없이 진척되고 있다. ” (2017/01/02,신년사에서 2016년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평가하며) “올해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재무건전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사업의 근원적 경쟁력 확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신규사업과 신규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탁월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선도자로서의 경쟁우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 (2017/01/02 신년사에서) “지난해는 감동적인 미라클 두산이었다. 올해는 통합우승까지 이뤄냈다. 실력으로 일군 우승이다. 선수들 모두 고생했고 앞으로 최강팀으로 오래오래 남아줬으면 좋겠다.” (2016/11/02, 두산베어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지난해 가을처럼 팬들에게 선물을 해달라.” (2016/02/24, 미야자키 아이비구장을 방문해 두산 선수단을 격려하면서) “구단주를 지목할 수 있는 우리 두산 선수들이 최고다. 다 좋은 데 두산 성적은 빼고.” (2014/08/24, 잠실야구장에서 오재원선수에게 지목받아 아이스버킷 챌린지 동참하면서) “기업의 성과는 특정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에 의한 경우가 많으며, 이런 팀플레이가 만들어내는 성과가 훨씬 크고 지속적이다. 야구도 팀 스포츠인 데다 여러 기법의 통계와 상대팀에 대한 분석이 활용되는 등 경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야구에서 경영에 대한 시사점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2013/0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스바루는 국내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본다. 스바루에 대해 알고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느냐. 특히 스바루의 가격으로 치열한 국내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2010/05/31, 일본 혼다자동차의 국내 공식딜러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두산모터스의 사장으로 재직할 때 스바루 등 일본차의 국내진출이 많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야구단 운영의 원천은 선수들. 선수들이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투자를 결정했다." (2009/03, 베어스파크 설계과정 전체를 직접 챙기면서) ◆ 평가 재벌가 자제답지 않게 소탈하고 과묵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 박두병 창업주의 장손이자 4세들 가운데 맏형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묵한 스타일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두산그룹 안팎에서 삼촌이었던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경영권 승계시점을 두고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한동안 나돌기도 했다. 두산가 4세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두산그룹 4세 경영의 1순위로 꼽혀왔다. 결정적인 순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왔다고 전해진다.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상사BG를 맡은 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사업 위주로 정리했다. 그 결과 다음해인 2000년에 매출액이 30% 이상 늘어났다. 두산그룹의 성장동력 발굴하는데 일조했다고 평가받는다. 박정원은 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서 2014년 연료전지사업, 2015년 면세점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산의 연료전지사업의 경우 2년 만에 수주 5870여 억 원을 올리는 등 두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정원은 인재를 중시하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현재 구단주를 맡고 있는 두산베어스의 선수육성 시스템에서 그런 철학이 잘 나타난다고 한다. 두산베어스는 역량 는 무명선수를 발굴해 육성시키는 화수분 야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업의 성과는 특정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에 의한 경우가 많고 이런 팀플레이로 이룬 성과가 훨씬 크고 지속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경영은 야구와 유사한 점이 많고 야구를 보면서 기업 경영의 시사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정원은 KBS 탐사보도팀이 그룹 후계자들의 경영능력에 대해 실시한 전문가 조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조사는 기업 지배구조를 전공한 대학 교수 12명과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추천한 애널리스트와 펀드 매니저 20명 등 전문가 50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그러나 엇갈린 평가도 나온다. 2009년부터 두산건설의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두산건설은 건설경기 침체로 2013년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로 인해 두산그룹 4세들의 경영권 승계시점이 뒤로 미뤄졌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박정원은 2004년 일본 혼다와 판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입차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사업을 정리했다. 이런 점 등으로 미뤄 두산 3세에 비해 박정원 등 4세 경영인이 아직 인상적인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 기타 박정원의 장인은 공군 참모총장과 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씨다. 부친인 박용곤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선후배 사이로 동창회 모임에서 두 사람의 혼담이 오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묵한 성품과 달리 스피드와 관련된 취미를 갖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광인데 야구를 좋아하는 것도 투수의 강속구와 타자의 빠른 타구가 보여주는 스피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두산베어스 구단주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2014년 7월 55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훈련장인 베어스파크의 공사를 시작했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닐 때 야구동아리에서 2루수로 활동할 정도로 야구에 관심이 많다. 해외 스프링캠프(전지훈련 장소)를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하고 시즌 중에는 수시로 야구장을 방문해 경기를 관람한다. 회사로 바쁘면 이메일이나 SNS를 통해 경기 결과를 챙기고 매년 시즌 개막전에 선수단에게 기념 떡을 선물한다. 김승영 두산베어스 사장은 "야구단은 팬사랑과 함께 야구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선수단과 프런트의 영역을 철저하게 존중해주고 전폭적으로 응원해주신 구단주가 있어 오늘의 영광을 맞을 수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의 지분 2016년 9월 기준으로 6.29%를 확보하고 있다. 두산가 4세들 중 가장 많고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지분 3.47%보다도 많다. 두산가 4세들의 분기별 모임인 ‘패밀리 미팅’을 주관하고 있다.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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